-루광.
마지막 순간 청샤오시가 루광을 돌아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루광은 그에게로 손을 뻗으며 무언가 소리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청샤오시의 몸이 스러졌다. 그의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나와 루광의 발밑을 적셨다. 루광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헉,”
동시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 꿈이었다. 다행히, 꿈일 뿐이었다.
失眠飞行
창으로 어스름한 새벽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청샤오시가 잠결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광은 조용히 일어나 청샤오시의 곁으로 갔다. 청샤오시는 복잡한 루광의 속도 모르고 세상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두 눈으로 그의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루광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곳에 분명히 존재했다. 루광은 단잠에 빠져 있는 청샤오시에게 일말의 야속함조차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청샤오시가 그 자리에 있음에 감사했다.
‘그래, 그렇게 있어. 진실 같은 건 들여다볼 필요 없어.’
꿈속에서 루광은 피 웅덩이 속으로 계속,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끈적하고 불투명한,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루광은 가라앉고 있었지만 달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은 아무래도 좋았다. 루광은 늪 바깥의 모든 것이 저를 따라 늪으로 끌려 들어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예를 들면, 제 앞의 바보 같은 파트너 녀석처럼.
사진에 들어간 뒤에는 절대 과거를 바꾸면 안 돼.
청샤오시에게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해 온 주제에 루광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킬 수가 없는 약속이었다. 모든 일의 시작부터 이미 규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고, 루광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청샤오시와 스스로를 속여왔다.
청샤오시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루광은 그를 알았다. 청샤오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청샤오시의 눈빛을, 루광은 오히려 낯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금세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이야 다시 쌓으면 되었다. 지난 삶에서도 루광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주었던 청샤오시였으니, 이번에도 제게 다가와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루광은 청샤오시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어도 상관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나. 이 모든 건 청샤오시 하나만을 살리기 위한 여정인데. 네가 살아만 있다면 뭐든지 괜찮았다.
루광은 기억을 되짚어 청샤오시와 처음 만났던 장소로 갔다. 우연을 가장해 의도적으로 그와 다시금 ‘처음’ 만났다. 껄끄러워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청샤오시와 가까워졌던 과거와 다르게 이번에는 루광 또한 한 걸음씩 다가갔다. 청샤오시는 ‘이거 봐, 우린 의외로 잘 맞는다니까?’하며 전부 자신의 덕이라 자화자찬했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일이 시작되기 전에 청샤오시가 먼저 루광에게 다가왔기에 둘이 가까워진 것이긴 하니,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동안 사진관에서 지내면서 루광은 머릿속으로 앞으로 자신이 바꿀, 바꿔야만 할 미래만을 거듭 그렸다. 아니지, 거듭 정도로는 부족했다. 수백, 수천 번을, 같은 상황만을 그렸다. 청샤오시가 숨을 거두던 순간의 모든 것이 루광의 머릿속에 아프게 새겨졌다. 루광은 그 순간이 다시 찾아왔을 때 반드시 막아내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루광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제대로 눈을 붙여본 게 언제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청샤오시를 살리지 못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완벽하게 대비하기 위해서 너무 많이 생각한 나머지, 쉬어야 할 시간이 찾아와도 쉬지 못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할 상황은 최대한 줄여야만 했다. 미래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는 안 됐다. 달라지는 것은 단 하나, 칼에 찔리던 그 순간 하나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바꿔야만 할 단 하나의 과거이자 미래를 생각할 뿐인데, 청샤오시의 죽음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가 어떻게 죽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이 혼동되었다. 어느 밤은 그가 총에 맞아 죽었다. 또 어느 밤은 칼에 여러 번 찔렸다. 머리 위에 철근이 떨어졌다. 차에 치였다. 물에 빠졌다. 난데없이 목을 매달고는 루광과 눈이 마주치자,
“루광.”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웃기도 했다.
푸른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루광은 청샤오시가 잘 있음을 확인했다. 그 후 조용히 일어나서 인화실로 갔다. 그건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루광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수많은 꿈에서 수많은 방법으로 청샤오시가 죽더라도, 아무리 꿈과 현실이 헷갈리더라도 루광은 명확하게 최초의 기억을 되새겨야 했다. 청샤오시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루광은 청샤오시가 죽는 순간을 뼈에 새기듯 선명하게 되새기고 있었다.
그건 청샤오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띠면서도 누구보다도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행위였다. 글로 써 남길 수는 없었다. 모든 건 오롯이 루광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청샤오시의 죽음은 루광의 머릿속에서 불어난 그 어떤 죽음보다도 간결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되새기던 최초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루광은 멍하니 생각했다. 어째서 너였을까. 그건 오갈 데 없는 원망이자 동시에 제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자신이 또 놓칠지도 모르는 너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다.
오늘도 루광은 조용히 인화실로 갔다. 분명 루광이 바꾸고자 했던 시점은 바뀌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미래’에 해당했다. 모든 걸 해결하고 나면 편안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루광은 여전히 악몽을 꾸었다. 청샤오시의 죽음을 봤다. 두려움에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청샤오시가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청샤오시의 길은 달라졌는데, 이상하게 루광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
대비하려던 모든 일이 지나갔는데도 루광은 지나간 일을 습관적으로 복기하고 있었다. 잊는 게 나에게도 좋아. 잊어야만 해. 그런 다짐은 루광에게 조금도 도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든 게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지금 마주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너무 많은 변수가 개입했다. 다른 능력자와 접촉할수록,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존재들과 부딪힐수록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그동안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이 무효해진다는 의미가 되었다. 루광은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었다.
루광이 겪었던 청샤오시의 죽음은 이미 루광이 받아넘겼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말로 창자를 쏟아낼 듯 큰 부상을 입었으니. 몇 번을 시도해도 죽음을 바꿀 수는 없었는데, 차라리 그 죽음이 향할 대상을 바꾸는 건 가능하다는 걸까. 어찌되었든 루광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면 되었다는 생각이 더 컸다. 이제는 자신의 모든 목적과 가치가 오롯이 청샤오시를 살리는 일로만 향하는 것 같았다.
네가 다치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샤오시는 끝까지 사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원래부터 남들에게 마음을 곧잘 쏟아내곤 했다, 그 녀석은.
루광 또한 흐지부지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은 모든 일의 중심에 발을 디뎠고,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쉬이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끝을 봐야만 한시름 놓고 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생각에 의심을 품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번, 루광의 생각이 흔들렸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 일의 끝을 봐야겠다는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청샤오시가 총에 맞았던 순간에 루광은 자신의 선택을 의심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렸다. 이런 식으로 실패할 수는 없었다.
무슨 정신으로 구르고 굴렀는지, 분노에 차 공격을 하는 게 자신인지 그 변호사였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터져 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이게 자신의 것이라 다행이었다. 정신은 몽롱해졌지만, 마지막으로 본 게 든든한 지원군의 얼굴이었으니 마음 놓고 뒤를 맡길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멀건 국만 먹었는데, 역시 정크푸드를 먹어야 만족감이 든다니까. 루광, 넌 왜 안 먹어?”
신나게 케이크를 퍼먹는 청샤오시 앞에서 루광은 현실감이 들지 않아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루광과 청샤오시가 두 달 만에 퇴원하고 사진관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챠오링이 퇴원 축하 파티를 열어주어서 간만에 칼로리 높고 배부른 식사를 했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였다. 루광은 케이크를 떠먹긴 했지만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청샤오시는 그저 기분 좋은 얼굴로 과자나 뜯어 먹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고, 더는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불안 속에서 지낸 나머지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건지 루광은 알지 못했다. 불안할 때 오곤 하던 곳이 인화실이었기에 습관적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이젠 여기에 온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부터 인화실이 별달리 도움을 준 적도 없기는 했다.
“루광, 여기서 뭐 해? 이 시간에.”
청샤오시가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잘 때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잠들면서, 웬일로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곧장 눈을 감지 않고 걸어 나온 것도 의외였다.
“너야말로 왜 나온 거야? 잘 깨지도 않으면서.”
“아니, 그냥. 목마르기도 하고. 너도 없는 것 같아서.”
이상한 데서 감이 좋은 청샤오시가 불안불안하게 서 있는 루광을 바라보았다. 루광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청샤오시를 마주 보다가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툭 짚고 지나갔다.
“네가 혼자서는 못 자겠다는데 바로 들어가야겠네.”
“내가 언제 그랬어? 혼자 못 자는 건 너겠지.”
청샤오시가 투덜거리며 물이나 마시러 갔다. 루광은 내심 청샤오시가 한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하지. 혼자 남는 게 두려워서 모든 걸 뒤바꾼 건 자신이니까. 루광은 청샤오시가 곁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반대로 청샤오시는 루광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살아 나갈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아무리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려도 결국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이니까.
“루광.”
청샤오시가 조금 잠긴 목소리로 루광의 이름을 불렀다. 그저 잠기운 때문이겠지만, 루광은 괜히 놀라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보는 순간이 한없이 느려졌다. 루광이 고개를 돌렸을 때 청샤오시는 인화실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서, 막을 수도 없이 피를 쏟아내며, 밭은 호흡을 겨우 이어가다가, 결국 마지막 숨을 내뱉고…….
“…왜, 청샤오시.”
아니, 아니다. 그건 거짓된 환상일 뿐이었다. 루광은 놀란 내색을 할 뻔한 것을 겨우 감추고 청샤오시를 보았다. 그는 그곳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힘든 일 있으면 말해.”
“뭐?”
“아니, 뭐…. 그냥, 살다 보면 좀 힘들 수도 있고. 그러니까. 혹시나 너도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털어놔 봐라, 이거지. 그래도 내가 도움 될 수도 있지 않겠냐.”
“그걸 보통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말하나.”
“흠흠,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째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역시 알 수 없는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다. 모르는 척 청샤오시를 타박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루광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하기를 택했다.
“그래. 고맙다.”
청샤오시가 머쓱한 듯 제 뒷목을 매만지고는 먼저 주방으로 갔다. 아마 그는 모르겠지. 별거 아닌 듯한 그 말이 루광에게는 제법 위안이 되었다는 걸.
루광은 먼저 자신의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곧이어 청샤오시가 요란하게도 ‘으챠.’하며 침대에 철푸덕 드러눕는 소리가 들렸다.
“잘 자, 루광.”
“……너도.”
오늘은 잠들 수 있을까. 루광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청샤오시의 숨소리를 듣다 보니 조금은 불안감이 가시는 것도 같았다.
꿈 없는 밤이 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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